06_2016catacomb_IS눈을 뜬 채 소리 내지 않고 기도해야 했습니다.
그의 중얼거림은 분명히 찬송이었고 무엇인가 외우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혼자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주여!’라고 불렀습니다. 성경은 가져본 일이 없습니다. 고정된 주파수를 맞춘 라디오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무엇인가 속으로만 웅얼거리는 할아버지의 소리를 늙은이의 노망소리로만 생각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상상해 본 일이 있습니까?
어쩌다 땅 바닥에 십자가를 그리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강변에 사는 친척집에 쌀을 얻으려고 떠났습니다. 그 곳에서 할머니는 강 건너편에 보이는 빨간 십자가를 가슴에 품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주일 아침마다 십자가를 마음에 그리며 혼자만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집으로 돌아간 할머니는 병이 들었습니다. 마음의 병입니다.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 할머니는 며느리에게 생명을 건 부탁을 했습니다. 며느리는 할머니의 부탁에 주변을 살피며 한마디를 했습니다.
“이제 말씀하시는 군요. 저의 집안은 대대로 예수쟁이야요…” 며느리의 말에 시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랬었구나 왠지 다르더라만…”라고 했습니다.

 

평양에 사는 아주머니는 언니를 보러 만주에 왔다 돌아가는 길에 본회 사역자를 만나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리고는 언니에게 전화를 해서 “나 공부하고 있다.”는 한 마디를 남기고 평양으로 돌아갔습니다. 성경공부를 공부로 말한 것입니다. 그렇게 모여진 사람들은 중국에 갔다 돌아 온 이의 선물을 받으러 모여듭니다. 아니 예수쟁이들의 손에 들려진 것은 찢어진 선물 포장입니다. 그 포장지는 성경을 한 장 두 장씩 찢어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고백했을 때 로마시대만을 생각했던 저는 실제로 그 말씀이 북한에서도 일어남을 확인했습니다.

 

북한의 지하교회. 그 교회엔 피아노나 키보드 그리고 드럼도 없습니다. 아니 의자나 강대상도 없습니다. 물론 목사도 없습니다. 건물도 없이 만났다 헤어지고 헤어졌다 만납니다. 북한의 지하교회는 그렇게 흔적 없이 존재합니다. 화장실에 매 주간 갖다 놓은 종이쪽지도 성경 말씀이었습니다. 모이는 곳이 헛간일 수도 창고일 수도 있습니다. 지하에 들어가서 모이기도 하지만 그곳 또한 언제 만날지 모르는 예배당입니다. 복음방송과 입소문이 그들에게 유일한 말씀의 전달자가 될 뿐입니다.

 

지난 몇 십 년을 성경이 없어 방송에 의지해 하나님 말씀을 되새기고는 했습니다. 목사나 선교사 없이 살아온 70년대 초기에는 그래도 예수님을 아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이 유일한 복음의 전파자 역할을 감당해 주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땅바닥에 그리다 그만 깜짝 놀라 주위를 살피는 성도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소련영화의 한 장면에서 십자가를 보며 가슴이 쿵쾅거려 혼났다는 성도도 있습니다. 그 보다 시장에서 얻어 온 영화가 나사렛 예수였음을 알고 소리 내지 못하고 숨 죽이며 울었습니다. 한 두 명이 모인 지하교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27명이 모이는 곳도 있습니다. 숲 속에도 땅굴 속에도 있습니다.
오늘의 북한지하교회 모습입니다.

무익한 종이삭목사님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