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소식 2017.3] 성경배달 사역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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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나는 중국으로 정탐여행을 떠날 계획을 가지고 준비를 하며 복음이 제한된 공산권국가에 성경을 배달했던 브라더 앤드류의 <복음은 철의 장막을 뚫고>와 브라더 데이빗이 쓴 <중공으로 보낸 하나님의 밀수꾼>이라는 두 권의 책을 읽었다. 그러면서 왠지 이분들이 내가 가야 할 길을 앞서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1976년, 중공에 성경을 가져간 브라더 데이빗은 성경을 받을 때마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중국 성도들을 직접 만나면서 성경 배달 사역의 필요를 더욱 절감하게 되었다. 마침내 그는 모두가 미쳤다고 하는 100만 권의 성경을 단 한 번에 배달하는 ‘펄 프로젝트(진주 계획)’를 믿음으로 기도하며 추진했다.

 

“여보게들 저기 보트 하나가 우리를 향해 곧바로 달려오고 있군!‘
긴장된 모습으로 쌍안경을 들어 살피던 선장의 외침이 정적을 깨뜨리고 말았다.
“기관총이야 그 옆에 무장한 군인 한 사람이 있는데 저건 중공의 경비정이야!”
순간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경비정이 분명합니까?”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기관총을 장치한 배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달빛에 기관총 사수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깊은 숨을 들이쉰 나는 “주님,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나이다. 오직 주님만이 이 상황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나이다. 해안에서 기다리는 신자들을 주님께서 극진히 사랑하시며, 그들에게 성경이 전해지길 주님께서 얼마나 원하시는지를 우리는 알고 있나이다. 주님, 우리는 뒤로 물러나오니 주님께서 모든 것을 맡아 주옵소서”라며 조용히 기도를 끝냈다. 만약 발견된다면 ‘진주 계획’은 완전히 중단될 수밖에 없고 신자와 선원들의 생명이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하기에 나는 진주 계획을 준비하며 “밤새도록 저편이 이편에 가까이 못하게…” 출애굽기 14장의 말씀을 주님 앞에 내어 놓으며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기를 요청하였다.
25피트의 선체와 무장된 기관총이 확실히 드러나자 우리 일행은 배가 점점 더 가까이 오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런데 그 경비정은 성경을 실은 배를 보지 못한 것처럼 멈추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순간 배 안에서 숨죽이며 기도하던 사람들은 기쁨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렸다. 배가 해변에 다다르자 선원들은 보트를 내렸고 4분 만에 모든 하역 작업을 끝마쳤다. 드디어 232톤이나 되는 100만 권의 성경이 12개의 짐으로 묶여 층층이 쌓였다.

 

첫 번째 성경 상자가 해변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성도들이 짐을 풀었다. 성경임을 확인하는 순간 기쁨에 할 말을 잊고 “오호! 아! 아”라는 감탄사만 연발할 뿐이었다. 그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성경을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자기 나라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는 것을 본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했던 성도들이었는데, 드디어 손에 넣은 것이다.
그러나 언제 발각될지 모르기에 그들은 채 가시지 않은 감격을 억제하고 성경을 받기 위해 함께 친구들을 부르자, 근처의 나무숲에 숨어 기다리고 있던 성도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들은 90권 씩 한 박스로 포장한 48개의 상자가 1톤의 짐으로 포장된 것을 뜯어 대나무 막대기에 걸어 한 번에 두 개의 상자를 어깨에 메고 가능한 빨리 그리고 멀리까지 성경을 나르기 시작하였다. 트럭도 사용되었다.

 

성경 전달은 재빠르게 진행되어 2시간 만에 모두 마쳐졌다. 우리 일행은 중공의 형제 자매들에게 작별 인사를 마치고 서둘러 엔진의 시동을 걸었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우리가 가져간 많은 짐이 성경임을 확인하고 감격에 눈물 흘리던 성도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순간 나는 무릎을 꿇고 “주님, 무엇보다도 이번에 성경 운반하는 일이 무사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핍박 받는 가정 교회의 사정이 외부에 알려지게 하시고, 이번 진주 계획을 통해 중공 정부가 성경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적절한 양의 성경을 출판하여 성도들이 쉽게 성경을 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
데이빗이 쓴 <중공으로 보낸 하나님의 밀수꾼>의 일부이다.
백만 권의 성경이 중국 성도들에게 전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 속에 문득 “그렇다면 북한은? 북한은 어떨까? 북한에도 성도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성경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 공급이 끊겨 수십 년간 골방에서 숨죽이며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을 북한 성도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나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중국에 정탐 여행을 다녀온 직후 1983년부터 본격적인 사역을 위해 공산권 선교를 하는 기관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1955년에 만들어진 오픈도어(Open Doors)선교회는 복음이 제한된 지역에 성경을 배달하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단체라면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사역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겠다 싶어 전화를 걸었다. 오픈도어 측에서는 내가 중국에서 만주를 지나 러시아 국경까지 다녀온 것을 듣고 나서, 내가 그곳에서 찍어온 사진을 받아보길 원했다.

 

얼마 후, 나는 그 사진을 전해줄 겸해서 당시 오픈도어의 국제 회장이었던 데일 키츠만을 찾아가 만났다. 키츠만은 나를 사무실 한 켠에 앉혀 놓고, 오픈도어가 진행하고 있는 북한 사역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한참 동안 북한 선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그가 갑자기 내 눈을 바라보며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북한 땅을 향한 우리의 열심만으로는 북한 선교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소. 그래서 북한 선교를 담당할 적임자를 찾기 위해 10년 동안 기도했소. 1974년부터 1984년까지 꼬박 10년 동안 말이오. 북한에서 태어나서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고, 북한 선교에 뜻을 품은 사람이오. 그런데 그런 사람을 드디어 찾았소.”

 

나는 키츠만이 10년 동안 기도하며 마침내 찾았다는 사람을 보고 싶어 상기된 목소리로 “그런 사람이 있단 말인가요? 그럼, 제게도 소개해 줄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물론이죠. 저를 따라 오시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키츠만을 따라갔다. 그는 나를 데리고 복도를 지나다가 커다란 휘장 뒤에 가려져 있는 북한지도를 보여주었다. 지도에는 빨간 점들이 빼곡히 찍혀있었다. 그 지도에 찍힌 3,800개의 빨간 점은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의 지역별 분포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그런 정보를 알지 못했던 나는 내심 놀랐다. “아니, 이렇게 많은 북한 성도들이 존재한다니!” 하나님이 하신 일이 놀랍기만 했다. 키츠만은 어안이 벙벙한 내게 북한 성도들의 명단을 보여주었다. 그는 열쇠로 잠겨있는 캐비닛 안에서 두꺼운 파일을 꺼내 들었다. 파일을 건네 받은 나는 3,800명의 명단을 한 장씩 넘겨가며 이름과 주소를 순식간에 다 외웠다.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은사인 ‘포토그래픽 메모리’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그의 허락 하에 북한 성도들의 정보를 가져올 수 있었다.
드디어 키츠만이 나를 데리고 간 사무실에는 열다섯 명 남짓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나는 그들 중 누가 북한 선교를 담당할 적임자인지 몹시 궁금한 마음에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곧이어 열다섯 명 모두가 사무실에서 나가고 나와 키츠만, 단 둘만 남았다. 키츠만이 나를 보며 말했다. “바로 당신이 우리가 10년 동안 기도하며 찾았던 그 사람이오!”

 

예상치 못했던 그의 말에 나는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북한에서 태어나고 고향을 떠나, 어머니를 잃고 동생들을 돌보면서 살아왔던 세월이 삽시간에 스쳐 지나갔다. 미군에 입대해 군인으로서의 삶을 살다가, 사업이 번창하던 중에도 기억에서 떠나지 않던 어머니의 유언…
“북한 가라. 가서 돌아오지 마. 거기서 죽어, 거기서 묻혀.”
마침내 모든 시간들이 퍼즐 조각처럼 맞춰졌다.

 

catacomb_03_sc01_2그로부터 2년이 지난 1985년 10월 28일, 모퉁이돌선교회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1983년 중국에 가서 “성경을 꼭 다시 가져다 주겠습니다.”라고 약속한지도 2년이 지나있었다. 한 개에 25kg에 달하는 가방 10개에 성경을 가득 담아 양쪽 어깨와 양손에 가방을 들고도 두어 차례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분량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함박눈이 내려 길이 사나웠지만, “성도들의 빈 손에 성경을 넘겨줄 수 있다니!” 라고 생각하며 택시를 잡아 탔다. 그런데 한참 동안 눈길을 달리던 차가 미끄러져 움푹 패인 도로에 박히고 말았다. 이 길을 빠져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차를 밀어보아도, 눈길에 박힌 차는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한 10분쯤 눈길에 갇혀 있던 중, 뒤에서 트럭 한대가 나타나자 택시 기사는 서둘러 트럭을 멈춰 세웠다. 트럭 운전사가 목적지를 묻자, 우리는 불안한 마음에 조금 망설이다가 목적지를 말해주었다.
“내일 오실 줄 알았는데 어떻게 지금 오세요? 이상하지요. 오늘은 특별한 일도 없는데 왠지 밖에 나가고 싶어 나갔다 오는 길이었어요.” 그 트럭 운전사는 우리가 찾아가는 교회의 사역자였다. “이제 보니 하나님께서 저 가방을 인수해가라고 하신 거네요!” 알고 보니 우리가 탄 택시 기사도 가정 교회의 성도였다. 성경을 배달하는 길에 택시 기사와 트럭 운전사를 동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무사히 목적지에 다다랐다.

 

‘똑똑’ 문을 두드리니 낯익은 조선족 아주머니가 문틈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여기 성경 250권이요.” 아주머니는 성경을 받고 아무 말도 묻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는 돌아서는 내 등 뒤로, “다음에 올 때는 성경 100권만 더 개고오라요. 신약과 시편이 있는 요만한 가죽 성경 있지요? 그거 가져오면, 우리가 북조선에 보낼 수 있어.”
‘북조선… 북한? 북한에 성경을 보낸다고…? 북한에 성경을 보낸다니, 성경을 보낼 수 있다니…!’
조선족 아주머니의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한참을 멍하니 한 자리에 서있는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강하고 분명한 음성을 들려주셨다.

 

‘나는 북한을 포기한 적이 없다.
그 땅에 내 백성이 살아있다.
내가 남한 성도들의 기도를 듣고 있다.’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음성이 내 심장을 뒤흔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기차에서도, 비행기에서도, 숙소 침대에서도 나는 눈이 뻘개지도록 울고 또 울었다. 너무나도 선명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나는 성경 배달의 강력한 명분을 얻었고, 세상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든든한 후원자를 얻은 기분이었다. ‘하나님이 원하신다니…!’ 나는 북한 땅에 살아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지체하지 않고 성경을 배달해야 했다.

 

그리고 32년이 지난 오늘 또 다시 하나님은 내 가슴을 뛰게 하는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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