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성도 이야기] 내래 예수님을 이렇게 믿게 되었습네다!

 

남한에 정착한 대부분의 탈북민들은 탈북 과정에서 복음을 듣게 된다. 특히 중국에서 복음을 전해 듣는 경우가 많다. 고향을 떠나 몇 푼의 돈에 의지해 떠돌던 탈북자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을까? 탈북민들이 예수를 믿게 된 사례를 통해, 통일 시 북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복음 전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고자 그들의 이야기를 나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왔다고 하는 말에 심장이 돌아눕는 것 같았슴다!

 

김영광 형제

 

 

저는 북한에서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에 근거한 유물론적 사상에 기초하여 교육을 받았고 북한에 있을 때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부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기독교와 하나님에 대해 들을 기회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떠올려보면 아주 어린 시절에 다른 시에 사는 이모가 저에게 ‘너 하나님이 없는 줄 아느냐. 하늘에 하나님이 계시다. 절대로 어디 가서 죄를 짓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고 거짓말도 말라.’ 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후에 보니 성경에 다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천국에 대해서 듣기도 했고 성경책을 몰래 반입하다 잡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기독교에 대해서 잠시 고민을 해보기는 했지만 그 생각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고, 저는 2007년에 북한 체제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몇 달 후, 북한에서 저를 잡으려고 보위부원을 파견했다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갈 곳이 없는 저는 5층 창문에서 바깥을 내다보며 ‘어떻게 죽어야 아프지 않을까?’ 라는 궁리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는 사람을 따라 조선족 목사님 한 분이 들어왔습니다. 그 분은 제게 “하나님 이름은 들어보았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들어는 보았지만 믿지 않슴다.”
“하나님이 있는 것을 압니까?”
“에이, 무슨 귀신 같은 거를 믿고 그러심까?”
“예수님을 압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데 진짜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도 저는 속으로 ‘반동 같은 소릴 지껄이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조선족 목사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고 조건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와 김 형제를 위하여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는 분이 나를 위해 왔다고?’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와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고’. 순간 저는 마치 심장이 돌아눕는 것 같은 쿵쾅거림을 느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전에는 믿기지 않았던 하나님이 믿어지기 시작했고 눈물과 콧물을 펑펑 쏟으며 영접기도를 했습니다. 영접기도를 하고 나니, 걱정이 많았던 전과는 다르게 마음의 근심이 사라지고 평안함이 가득 찼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바로 그 주일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주일과 수요일이 기다려졌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습니다. 중국에 남아있는 시간 동안 구체적인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탈북 과정에서 신분증도 없이 어설픈 중국말로 위기를 모면한 적도 있었고, 먹을 것 없이 숨어 지낼 때도 하루하루를 기적처럼 보내게 하셨습니다.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잠시 뜨거운 마음을 잊은 적도 있지만, 항상 마음에 빚을 진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탈북민과 북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기쁨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먼저 온 아이들을 통해 전화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성령 자매

 

 

저는 북한에서 우리 아이들을 먼저 남한으로 보냈습니다. 천금 같은 자식을 내놓고 가슴 졸이며 기다렸는데 남한에서 아이들이 탈북에 성공했다는 전화를 받고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런데 일 년쯤 지났을까요. 제 딸 효순(가명)이와 통화를 하는데, “엄마, 우리를 낳아주고 이렇게 좋은 땅에 보내줘서 너무 고마워. 그런데 엄마, 지금부터 내 말 똑바로 들어. 엄마가 이 좋은 땅에 꼭 와야 하는데 여기 오려면 엄마가 하나님을 믿어야 돼.”
저는 제 딸에게 “아이구 효순아, 나는 하나님이란 말을 입에 꺼내지도 못하겠다. 너무 어색하기만 하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제 딸은 멈추지 않고 말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모두가 한국에 가면 반동이 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통화를 길게 하지는 못했지만, 매번 제 딸 효순이는 “목숨을 각오하고 오는 위험한 길에 무사히 오자면 하나님을 꼭 믿어야 해.” 라며 저를 설득했습니다. 딸의 말을 듣고 나니 무조건 믿긴 해야 되겠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은 하나님이란 말이 안 나왔습니다. 탈북 날짜를 정해 놓고 탈북 길이 너무 험난하니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지면서 ‘그래, 우리 딸이 하나님을 믿으라는데, 하나님을 한 번 믿어 보자.’ 라고 생각하며 조카하고 딸이 가르쳐 준 대로, ‘아버지 하나님’을 반복해서 불렀습니다. 어떻게 기도하는지 몰라서 새벽마다 물을 떠서 나무 기둥에 올려놓고 ‘하나님, 우리 이제 가는데 꼭 살려주세요.’ 라며 한 달 동안 기도를 했습니다.

 

마침내 조카와 함께 탈북 길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압록강을 건너 브로커를 만나자마자 처소를 통과하는 도중에 공안에게 발각되어 깊은 산 속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브로커와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산을 올랐지만, 끝끝내 연락이 두절되어 산 속에 고립되게 된 것입니다. 어렵사리 남한에 있는 가족들과 통화를 하기는 했지만, 첩첩 산중에 있는 저와 조카를 데리러 올 사람은 없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이젠 정말 죽겠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하나님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라는 말만 떠올랐습니다. 계속 ‘하나님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를 외쳤습니다.
아마 조금만 더 시간이 지체되었더라도 저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겁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통화를 통해 들은 내용으로 저희들의 위치를 추적해서 사람을 보내온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라는 기도를 들으시고, 가족들이 ‘정말 너무 좋은 곳’이라고 한 남한 땅에서 자유롭게 하나님을 믿고 있는 지금의 삶이 정말 감사하고 소중한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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