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말하는 체제보장은
곧 수령중심의 세습체제이다!

 

모든 공산주의 국가는 세습을 할 수 없습니다. 세습이 모든 사람이 공평하다는 공산주의 이념과 정면충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국의 모택동, 소련의 스탈린도 자식에게 통치권을 물려주지 않았습니다. 북한만 유일하게 3대째 세습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공산주의 나라가 아니고 ‘주체’라고 하는 새로운 사상으로 수령을 신격화함으로 세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북한이 말하는 체제보장은 곧 수령중심의 세습체제를 말하고, 그래서 북한은 미국이 요구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완전히 핵을 폐기하는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수용할 수 없습니다. CVID를 수용하면 곧 수령중심의 세습체제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모든 공산주의 국가에서 종교탄압이 자행됩니다. 그러나 말살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해방 이후 그 많은 교회를 깡그리 깨부수고 종교를 완전히 말살시켰습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김일성은 분명히 기독교의 정신을 알고 있었고, 그걸 수령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이용했습니다. 해방 이후 철저한 종교탄압 특히 기독교의 말살정책을 꾸준히 단행한 결과 급기야 1968년 김일성은 “우리 공화국에서 종교는 완전히 멸절되었다”라고 천명합니다.

 

 

북한에는 헌법보다 높은 법이 있다!

 

“북한에 정말 신앙의 자유가 있는가?”
“봉수교회, 장충성당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진짜 신자들인가?”
“북한에 가정예배소가 수백 개 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한국에 와서 북한을 방문했던 종교계 인사들을 만났을 때 제일 많이 받은 질문입니다.

 

한국의 종교인이 북한을 방문하면 당연히 북한의 종교계 인사가 종교시설을 안내하며 신앙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선전합니다. 종교시설에 가서 종교의식을 참관하고 나면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착각입니다.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에도 종교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지만 북한에는 헌법보다 높은 법이 있습니다. 김씨 3대의 ‘말씀’, ‘당의 유일적 지도체제 확립을 위한 10대원칙’, ‘조선노동당규약’과 같은 수령과 당의 정책 등이 그것입니다. 당의 정책은 주체사상 또는 김일성, 김정일 주의만을 믿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으므로 북한에서 종교를 가진다는 것은 당의 정책에 반대하는 행위입니다.
북한은 6·25전쟁 이후 미국에 대한 북한 주민의 적개심을 종교에 돌리며 철저히 종교를 탄압했습니다. 교인들은 적대계층으로 분류되며 감시와 통제를 당했습니다. 북한은 종교를 ‘인민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도구’, ‘제국주의의 사상·문화적 침투의 도구 내지 앞잡이’라고 공격했고 교회를 ‘인민의 계급의식을 마비시키는 사상을 선전하여 퍼뜨리는 거점’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급기야 1970년대 김일성은 ‘북한주민들이 노동당만 믿고 살고 있으므로 종교문제는 해결되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랬던 김일성이 종교단체의 활동을 재개시켰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적화통일의 목적을 위해 말살한
교회건축을 지시한 김일성

 

1980년대 한국에 민주화투쟁의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김일성은 한국 종교단체들이 민주화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보고, 이들을 적화통일전략의 통일전선을 구축하려는 목적에 이용할 구실이 필요했습니다. 북한에도 기독교가 존재하고 있음을 내세워 한국의 반정부 종교단체들과의 교류를 확대해 이들을 포섭하려는 속셈으로 1988년에 평양에 봉수교회와 장충성당을 건설했습니다. 봉수교회를 건축한 후에 그 주변에 사는 간부 부인들로 가짜 성도들을 조직하고 “교회나 성당에 나와 찬송가를 부르고 종교의식에 참가하는 것은 단순한 활동이 아니다.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투쟁 활동이다. 미제와의 반미 성전에 떨쳐나선 남조선 종교계인사들을 쟁취하기 위한 그리고 조국의 통일을 위한 숭고한 투쟁이다”라고 특별강습도 시켰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이들이 교회나 성당에 나오게 하는 것이 어려워 출석부까지 만들어 출석이 저조한 사람은 생활총화에서 자기비판을 하고 호상비판까지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여성들이 ‘아프다. 집에 갑자기 일이 생겼다’는 핑계를 대면서 빠지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출석에 대한 통제가 완화되었음에도 교회나 성당에 나오는 여성 수는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자발적인 출석률이 100%가 되자 아예 출석부가 사라졌습니다. 종교활동의 좋은 점을 여성들이 느꼈던 듯합니다. 목회자의 설교를 듣고 노래도 부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예배와 찬양을 하는 시늉만 하던 이들이 믿음이 생기자 예배 시간 전부터 교회나 성당에 나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심지어 조금만 아파도 안 나오던 이들이 고열로 끙끙 앓아도 종교 활동은 빼먹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자발적인 모습에서 진짜 신앙이 생겼음을 간파하고 ‘위험 요소’가 돌출되자 당은 교회 주변에 접근하는 사람들 즉 숨어 있는 신도를 색출하기 위해 봉수교회 주변 아파트에 망원경을 설치했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들이 일어나고…

 

망원경 설치 후 당에서 놀라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교회에서 찬송가 소리가 들려오면 청년 몇 명이 나타나 교회 담장에 기대 무언가를 열심히 적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보위부가 그들을 체포했는데 음악대학 작곡반 학생들이었습니다. 1980년대에는 북한의 음악대학에서 자유주의 국가의 명곡을 가르치지 않았고 행진곡풍의 4/2박자의 곡들을 가르치고 만들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찬송가 선율을 들은 한 음악대학 학생이 그 사실을 급우들에게 알렸습니다. 찬송가를 듣고 채보하고 싶어도 교회에 들어갈 수는 없는 학생들은 담장 밖에서 몰래 찬송가를 듣고 채보하다가 보위부에 붙잡힌 것입니다. 이 학생들은 보위부의 경고를 받고 풀려났습니다.

 

그 다음 목격된 사례도 당으로서는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종교의식을 하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그 옆길을 서성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체포해 조사해 보니 예전부터 믿었던 신자였습니다. 김일성은 북한에 더는 신자가 없고 종교문제는 해결되었다고 선언했지만 교인들의 신앙이 변하지 않았다는 증거였습니다. 그들은 당국의 탄압이 두려워 신앙을 버렸다고 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1991년 외교적으로 고립상태에 놓였던 김일성은 얼마나 다급했는지 교황이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마다 열광적인 환영을 받는 뉴스를 보면서 교황을 북한에 오게 한다면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기대했습니다. 그리하여 1991년 외무성 내에 교황을 평양에 초청하기 위한 상무조가 만들어졌는데 이때 나는 상무조의 일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당시 바티칸 교황청에서 “북한에 진짜 카톨릭 신자가 있다면 바티칸에 데려와 달라”고 요구하자 북한 노동당 카톨릭교협회가 사회안전부 주민등록부를 뒤져 6·25 전쟁 전까지 독실했던 신자 할머니를 찾아냈습니다. 노동당의 카톨릭교협회 간부들이 할머니를 찾아가 “아직도 하느님을 믿느냐?”고 묻자 할머니는 “수령님과 노동당이 있는데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슨 소리냐”고 정색하며 대답했습니다.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다. 아직도 하느님을 믿는 신자를 찾아 로마 교황청에 보내야 할 필요성이 있어서 물어보는 것이다. 독실한 신앙인을 찾아내면 당과 국가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하자 할머니는 그때서야 “한번 마음속에 들어오신 하느님은 절대로 떠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당 간부는 할머니에게 어떻게 신앙을 지켜왔는지 물었고 할머니는 그들을 집 뒷담으로 데려가 뒷담 앞에 꾸려진 예배단으로 데려갔습니다. 당 간부는 할머니가 신자임을 확신하고 “혁명의 이익을 위해 대표단 성원으로 바티칸에 한 번 가셔야 되겠다”고 하자 할머니는 하늘을 바라보며 “하느님, 일생을 열심히 기도를 드렸더니 이렇게 어린 양을 불러주시네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일을 통해 노동당은 종교의 ‘무서움’을 절감했습니다. 교황이 평양에 오면 실제로 북한에 카톨릭 열풍이 일 것을 두려워한 북한은 더 이상 교황 초청을 추진하지 않았습니다.

 

 

10개 교회를 지으려던 계획이 중지되었다!

 

김일성은 봉수교회 외에도 원산이나 강계 등 지방 주요도시에 10개 교회를 건축하라고 지시를 했지만 봉수교회와 장충성당을 통해 주민들의 사상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우려해 더 이상 교회나 성당을 세우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외부에 보여주기 위해 지방에 교회나 성당을 지었다가는 체제를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는 이 같은 사실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에 각 지방과 도시마다 많은 교회가 세워지게 된다면 북한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북한에 더 많은 교회가 세워질 수 있도록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들이 힘을 써야 합니다.

 

 

 

북한이 언제 무너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여러분, 언제 북한의 문이 열릴 것 같습니까?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북한의 문이 열릴까요?”
여러분이 가만히 기도만 하고 있다면 북한의 문이 언제 열릴지 모릅니다.
김정은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정보가 차단된 북한주민들에게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한국을 비롯한 외부 세계의 실체를 북한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김일성과 김정일 통치기간에는 지도자의 카리스마가 흔들리는 상황이 와도 외부정보유입차단, 이동통제, 세뇌교육, 정치조직생활 등으로 체제유지가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의 시대에는 이런 것들이 다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한국의 인기 드라마나 영화가 DVD나 USB 형태로 몇 주 안에 북한 장마당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북한주민의 생활이 윤택해져서가 아니라 10여 년 전부터 전력사정이 악화돼 TV를 마음대로 볼 수 없게 되자, 중국기업이 대체할 영상물이 필요한 것을 간파하고 12볼트 배터리로 DVD나 USB를 재생하는 미디어플레이어 ‘노텔’을 생산해 북한에 유통시켰습니다. 노텔은 하루에 1~2시간만 전기가 들어와도 배터리 충전이 가능해 설령 정전이 되어도 장마당에서 새 배터리를 구입하면 됩니다. 가격도 30달러~70달러까지 저렴한 편이어서 북한의 거의 모든 가구가 노텔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DVD나 USB에 담긴 한국 콘텐츠가 북한전역에 무차별하게 퍼지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휴대폰의 도입으로 가격과 수요에 대한 정보공유가 북한 전역에서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북한의 가족이 북·중 국경지대에서 휴대폰으로 한국의 탈북자와 통화도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어용이라 할지라도 북한에 많은 교회가 세워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북한내부로 들여보내야 합니다. 이러할 때 북한주민들의 의식이 변합니다. 의식이 변하는 것은 어느 순간에 엄청난 폭발적 전기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태영호공사가 북한에 봉수, 칠골교회가 세워진 역사적 배경과 그 일을 통해 일어났던 놀라운 일들을 전하면서,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더 많은 교회를 북한에 세워야 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해 지금 북한 내부로 투입해야 함을 강조하고 당부한다. 이는 그만큼 북한선교가 다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무뎌져 미동조차 하지 않는 우리를 향해 나귀의 입을 통해 발람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깨우시고 도전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경고의 소리로 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