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교회로부터 세계 여러 나라의 선교기관과 교회가 연합하여 통일을 준비하는 KRIN 몽골리아를 조직하기 원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리하여 본회 몇몇 일꾼들이 몽골교회가 연합해 가진 「복음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선교전략협의회」에 다녀왔다.

모퉁이돌선교회는 1991년 몽골선교를 처음 시작하였다. 그리고 1993년에 3명의 사역자를 타선교기관과 협력하여 파송하면서 직접적인 몽골사역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난 25년 동안 하나님께서 몽골교회 가운데 행하신 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복음의 씨앗을 심게 하시고 자라나게 하신 하나님께서 몽골교회 가운데 행하신 부흥의 역사를 정리해 함께 나눈다.

 

 

어머니의 기도로 몽골선교가 시작되다

 

제주도에서 피난 생활을 하는 1952년 어느 날이었다. 당시 7살의 어린 아들이 성경을 두 번 읽고 나자 어머니는 “너 목사 돼라! 너 목사 되면 갈 나라가 있어, 소련, 중국, 몽골, 그리고 북한 가라”고 하셨다. 6·25 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어수선하고 혼란한 그 당시는 소련도, 중국도, 몽골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시면서 아들들에게 유언으로 북한과 몽골까지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선교사명을 유언으로 남기셨다.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한 이삭목사로 하여금 1985년 모퉁이돌선교회를 시작해 북한선교를 감당할 수 있도록 이끄셨다. 그리고 마침내 1991년 몽골선교를 시작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
이삭목사가 처음 방문했던 당시의 몽골은 소련과 정치·경제·문화·이념적으로 밀접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가 1990~91년 동유럽과 소련을 휩쓴 민주화 혁명에 동참해 주요 정치·경제 개혁을 단행하여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던 시기여서 실업, 인플레이션, 가난 등 경제적으로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1991년 12월에 니콜라이선교사와 몽골을 방문했던 이반석총무는 “울란바토르 호텔에 숙소를 정했는데 전기공급이 되지 않아 실내온도가 -27도, 실외는 -40도의 추운날씨였습니다. 난방이 되지 않아 화장실에 가서 수도꼭지를 돌리니 천만다행으로 뜨거운 물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추위를 피하려고 뜨거운 물을 틀어놨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수증기로 인해 얼굴은 물로 뒤덮이고, 옷이 축축하게 젖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순간 옷이 얼어 ‘우두둑’ 얼어 뻣뻣해졌습니다. 그리고 비행기가 얼어서 뜨지 못해 얼음을 녹이고 비행기가 떴는데 탱크를 실어 나르는 비행기였습니다. 안전벨트도 없이 모서리에 걸터 앉았는데 너무 추워서 덜덜덜 떨 정도로 정말 추웠습니다.”라고 회상했다. 이처럼 경제적으로 열악했을 뿐 아니라 이 시기에 모든 것이 정부에서 공산주의 아래 금지되었던 종교가 허가되니 대부분 불교로 돌아갔다. 그런 환경에서 선교사들이 몽골에 가서 복음전하는 일에 헌신하였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모퉁이돌선교회가 했던 선교는 현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한 선교사가 제자훈련을 시킬 장소가 필요하다는 요청이 있어서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건물을 구입해 주었다. 그리고 어린이 선교에 필요한 교재와 책자를 보내달라는 선교사의 요청을 받고 자료와 교재를 지속적으로 공급해 주고, 인쇄기와 스피커 등을 보내주어 현지사역자들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다. 1992년 5월, 한 선교사로부터 “기타 하나가 있으면 교회 하나를 세울 수 있습니다.”라는 얘기를 듣고 돌아와 4번에 걸쳐 기타 27개를 준비해 보내주었다. 그 당시 몽골의 인구가 230만 명이었고, 기독교인은 30여 명 정도였다.

 

1993년 이반석총무는 국내의 한 병원 원장님을 울란바토르 의과대학에 모시고 갔다. 그 때 한국에서 사용되는 80개가 넘는 수술도구 두 세트를 준비해 가서 펼쳐 놓으니 현지 의료진이 깜짝 놀랐다. 그림으로만 보던 것을 실제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본회에서 타기관과 협력하여 의료선교사 2명을 파송하였다. 이 때 선교사를 파송하면서 이들이 지역보건의료예방(Community Health Evangelism) 프로그램을 도입해 낙후된 몽골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훈련하였다. 의료선교사들은 현지인들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병원을 설립해 전문가들을 세우는 일을 감당했다.

 

1994년이 되었을 때, 몽골에 한국선교사들에 의해 대학교가 세워지고, 많은 한국 선교사들이 헌신해 복음을 전하고, 몽골교회가 자유로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것을 확인한 후 모퉁이돌선교회는 몽골사역을 하는 이들에게 넘겨주고, 복음이 제한된 지역 사역으로 옮겼다.

 

그리고 2012년 고 이홍숙목사가 15년에 걸쳐 번역한 몽골어 성경에 사전이 부록으로 첨부된 5천권을 인쇄하여 배달하였고, 지금도 필요한 성도들에게 보내지고 있다.

 

 

그리고 25년이 지났다!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25년 전 몽골공항에는 책상하나 밖에 없었어요. 공항을 나와서도 허허벌판 뿐이어서 여기서 어떻게 살아갈까?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몽골공항에 도착해 깜짝 놀랐습니다. 멋진 인테리어로 되어진 공항은 물론이고 공항을 나와 차로 이동하면서도 감탄했습니다. ‘차가 이렇게 많아 교통체증이라니…’ 몽골의 달라지고 발전된 모습, 울란바토르의 한 시내에서는 주변 건물과 건물에 걸린 네온사인을 보며, 여기가 홍콩인지, 뉴욕인지, 서울 한복판에 와 있는지 모를 정도여서 ‘이야!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반석총무는 우선 환경적으로 많이 변한 몽골의 모습에 놀랐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척박하기 그지없던 땅이었는데 25년이 지난 후 하나님께서 엄청난 역사를 이루어 놓으신 것을 볼 수 있었다. 기독교의 성장은 더욱 놀라웠다. 25년 전 30여명의 성도 밖에 없었던 몽골에 일행이 방문했던 울란바토르와 다르항 두 도시에만도 100여 개의 교회가 세워져 있고, 몽골전체에 600여 개의 교회가 세워져 하나님을 예배한다. 2017년 현재 몽골에 3만 6천여 명의 기독교인이 있으며 전체 인구의 1.16%이다. 현재 200여 명의 한국선교사들이 몽골에서 사역하고 있다.

 

이렇듯 양적인 성장과 부흥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예배하며 기뻐하는 몽골 교회의 모습이었다. 25년 전 전자앰프를 요구하여 가지고 갔더니 지도자를 훈련하던 선교사가 훈련을 마치는 사역자들에게 기타 한 대씩을 선물로 주기 원했다. 그때 선교사가 했던 말이 “기타 하나면 교회를 하나 개척할 수 있습니다.”였다. 이번에 가서 보니 그 말이 이해가 되었다. 기타 하나면 예배드리는 데 충분했다. 찬양을 좋아하는 민족이기에 어디서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했다. 그렇게 몽골교회는 기독교의 역사가 짧음에도 놀라운 부흥과 성장을 하였고, 무엇보다 이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연합과 하나됨의 교회공동체로서 북한선교에 적극 참여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몽골교회가 복음통일을 준비한다!

 

“몽골에 처음 갔을 때 우리는 주로 병원과 연결되어 사역했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발에 깁스를 한 젊은이들이 많은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왜 그런지 이유를 물으니, 그동안 공산당 치하에 있으며 속은 것에 끓어오르는 울분을 터트릴데가 없으니 전봇대를 발로 차 발에 금이 갔다고 했습니다. 또 거리를 지나가며 자동차를 보니 유리창이 안깨진 것이 없더라구요, 그걸 보고 가난해서 그러냐고 물으니, 여태까지 속아 살아온 사람들이 지배층이었던 공산당 간부들을 향하여 화를 낸다고 하는 것이 자동차 운전하는 사람들을 간부라 생각하고 돌을 던져 유리창이 깨진 거라 했습니다.”
당시 몽골에서 그 현장을 직접 목격했던 이반석목사의 이야기다.

 

역사적으로 구소련의 지배아래 있다가 독립을 맞은 몽골교회는 아직도 고난 중에 있는 북한주민과 성도들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저는 북한과 인접한 지역에서 몇 년 동안 북한선교를 하려고 애썼지만 훈련받지 못한 상태에서 갈등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아픈 상황에 몽골에 왔습니다. 여기에서 북한을 품은 사람들을 만나서 자연스럽게 기도모임을 하게 됐고, 그분들이랑 KRIN 몽골리아를 조직하고 기도하면서 사역담당자들이 정해졌는데 그 분들 중에 목회자분들이 여러 분 계십니다.”
미국인으로서 몽골에서 북한선교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선교사는 하나님께서 준비한 몽골교회 사역자들과 연합할 수 있게 하셨음을 감사했다. 이들 중에는 몽골교회를 위해 성경과 각종 주일학교 자료를 인쇄하는 인쇄소를 운영하는 사람, 몽골에 있는 북한노동자들을 섬기는 선교사와 몽골사역자들 등이 있었다.

 

KRIN 몽골리아 모임은 8월 27일 오전부터 시작되었다. 오후 시간에는 KRIN 몽골리아에 속해서 함께 기도하며 각자 하나의 서비스섹터를 맡고 있는 사역자들이 모여서 북한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저녁엔 다르항에 있는 교회들에 알려서 적어도 10개 교회로부터 북한에 관심 있는 몽골성도들이 모여서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틀 저녁 모두 120명이 많은 인원들이 모여서 북한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반석총무는 북한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 때문에 자신의 눈알을 팔아서 아들을 미국에 보내, 북한선교를 하게 하려 했던 그 어머니의 기도가 아들들로, 소련, 중공, 몽골, 북한에 가라고 했기에, 자신이 지금 몽골에 와 있노라고 전했다. 탈북민 릴리간사는 자신이 북한에서 탈북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과 그 가운데 경험한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현재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나누었다.

 

KRIN 몽골리아 모임은 이틀을 계획했지만, 다르항을 떠나는 날 오전까지 나흘 동안 계속되었다. 함께 모인 KRIN 몽골리아 지체들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간단한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며 실습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짧은 훈련에도 불구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에 놀랐다. 훈련을 마치고, 찬양을 인도했던 나싸목사는 이번 모임을 통해
“우리 몽골 민족이 북한 선교를 한다”라는 생각을 버리게 하셨다. 몽골 민족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에 예수님의 몸된 지체로서 고통 가운데 있는 내 지체를 위해 섬기겠다는 고백을 하였다. 몽골교회와 성도들이 북한의 성도들을 형제라 생각하고 함께 아파하는 것은 하나님이 부어주신 마음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북한 노동자들을 만나 사역을 감당해온 선교사와 몽골 사역자들이 이번 모임을 계기로 몇 사람은 북한에 들어갈 계획이고, 어떤 사람은 이곳에서 북한사람들과 매일 만나서 일을 하고 있었다. 몽골사람들이 북한을 위해서 얼마나 준비되었는지, 하나님이 지금 얼마나 아름답게 쓰시고, 앞으로도 역사하실지 기대가 되었다. 지금 북한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실제로 활발한 사역을 하고 있는 몽골교회가 통일이 되었을 때,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를 가져올 수 있는 교회로 성장한 것을 보았다.
또 하나는 통일된 나라에서 가장 필요한 연합을 가져올 수 있음을 보았다. 왜냐하면 몽골 사람들에게 연합을 잘 하는 좋은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복음을 가져올 수 있다. ‘부흥, 연합, 복음‘을 가져오면서 더하여 소고기와 양고기를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북한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주께서 부어주셨기에 가능한 아름다운 고백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몽골교회까지 동원해 북한을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급하신 마음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라는 이반석총무의 말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25년 전 복음의 불모지였던 몽골에 하나님은 많은 선교사들을 보내셔서 복음을 증거하게 하셨다. 우리 모퉁이돌 선교회 회원들의 기도와 함께 드린 선교의 씨앗을 기뻐 받으신 하나님께서 몽골교회에 놀라운 부흥과 성장으로 자라나게 하셨다. 이제 그들이 선교하는 모습을 본 그대로
“하나님이 보내시면 어디든 가겠습니다. 북한에도 가겠습니다”라고 헌신한다. 모퉁이돌선교회는 다시 몽골교회로 선교할 수 있도록 필요한 어린이 성경과 교재들을 인쇄해서 보내주고, 북한에 가져갈 북한어 성경을 보내주고, 그들로 북한에 들어가 같이 할 사역을 나누며 복음통일의 문을 함께 열어가게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