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칼럼] 그 한마디에 생명을 거는 북한 성도들

 

당시 한국에서 공산권 선교를 하는 이들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외국 여행 자체가 쉽지 않았을뿐더러 사회적인 분위기와 반공법으로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해외에는 공산권 선교를 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적어도 제가 만난 이들은 지역이나 이념 때문에 선교에 제한을 두지 않았습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나 미국은 일본을 통해서 혹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통해서 직간접으로 사역을 진행했습니다. 소련이나 중공 혹은 북한까지 조용히 그러나 뜻있게 선교 활동을 했습니다. 외교관과 군인들 심지어는 정보원들까지도 선교에 적극적이었습니다. 정부 주도는 아니었지만 선교 기관이나 개인이 그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 시기 서방 국가들은 방송 사역을 했습니다. 적어도 26개의 단파 방송이 중국을 향해 쏘아졌습니다. 또한 성경 배달을 했습니다. 기차, 버스나 택시, 선박까지 활용했습니다. 방송과 문서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들어갔습니다. 전도지를 바람에 날려 보낸 것은 물론이고 병 속에 전도지를 넣어 바다에 띄우기도 하고, 풍선을 이용하여 육지 내륙으로 성경이나 전도지를 보냈습니다. 원래 군인이나 첩보 기관에서 하던 방식을 선교 기관이 사용한 것입니다. 장사꾼들은 다니면서 전도지를 뿌리거나 조그마한 선물로 위장해 가지고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방법이 다양해지고 대담해졌습니다.

 

모퉁이돌선교회는 중국을 드나들면서 성경배달을 중심 사역으로 삼았습니다. 그렇다고 성경만 배달한 것은 아닙니다. 인쇄기, 녹음기, 라디오, 복사기, 등사기, 주일학교에서 사용하는 융판그림 부치기부터 교재, 찬양집과 찬송가, 달력, 그리고 가정교회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모퉁이돌선교회 일꾼들이 배달한 것들을 통해 조선족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가장 많이 요구되는 것은 성경이었습니다. 모퉁이돌선교회의 초기 우선 사역은 조선족을 위한 성경배달이었습니다. 그러다 중국인을 위한 중국어 성경배달이 시작됐습니다. 물론 북한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조선족의 북한에 대한 열정은 우리보다 현실적이었기에 그들의 요구를 외면할 수도 없었습니다. 한글 성경은 조선족에게로 그리고 북한 사람에게로 낱개로 시작해서 찢어서까지 가져갔습니다.

 

북한 성경 배달은 중국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 성경을 소지한 것이 발각되면 생명이 위험했습니다. 매를 맞는다거나 감옥에 보내어 수준 이상의 심한 고문 등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그걸 각오하고 성경을 가져가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특별 제작한 톰슨주석성경 75권을 가지고 평양에 들어갔습니다. 가져는 갔지만 정작 전달할 대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에게나 줄 형편이 아니어서 고기준 목사님께 전해 드렸습니다.
“이거이 등록하고 들어왔갔지?” 그 분의 첫 말이었습니다.
“아니요.”
“그럼 어떻게 이걸 공항에서 통과해서 가지고…” 목사님은 주변을 살폈습니다. “이걸 내 마음대로 써도 되는 건가?”라고 질문하고는 더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네. 목사님께 드린 선물인데요.” 저는 한 마디로 답했습니다. 그 후로 그 책을 북한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누군가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요? 거의 10년이 지났을 무렵 그 책의 행방을 물었지만 아무도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 나라. 은둔의 나라. 1999년을 끝으로 저는 그 나라를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그 나라를 서방 국가들이 무어라 부르는지 아십니까? 사마리아입니다. 어떤 이는 모압이라고도 부릅니다. 미안하지만 그들이 무엇으로 부르든 간에 그때 서방 선교기관이 하던 모든 일을 지금 모퉁이돌선교회가 하고 있습니다. ‘한 영혼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북한을 바라봅니다.
한 마디 말로 한 영혼이 구원받는다는 걸 아시나요?
한 장의 종이에 쓰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걸 아십니까? 한 권의 책이 열 명의 영혼을 구하고 열 권의 성경이 한 사람의 지도자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중국에서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사마리아이든 모압이든 무엇이라 부르든 간에 그 영혼들이 깨어서 주를 바라보게 되기만 한다면 생명을 하나님께 드릴 준비가 돼 있나요? 땅 바닥에 발로 그린 십자가가 신앙 간증인 것을 아십니까?
악수하면서 힘을 주는 순간에 전해지는 전율을 느껴본 일이 있습니까? 떠나면서 조용히 “예수” 한 마디에 생명을 거는 북한 성도를 본 일이 있습니까?
저는 그 일을 위해 지난 34년을 일해 올 수 있었고, 이제는 그 자리가 축복된 자리였음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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