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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성도들이 북한에 성경 보내는 일에 써달라며 헌금을 보내온 일이 믿어지십니까?

1970년대 중국은 영적으로 메말라 있던 기간이었습니다.

1976년 9월 9일 모택동 사망 전까지 그가 주도한 문화혁명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많은 문제들과 후유증이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문화혁명은 1976년 말에 끝이 났습니다.

그 기간에도 해외의 단파, 중파방송을 통해 중국전역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홍콩을 통해서 배달된 성경들이 광동성을 중심으로 중국의 남쪽 산악지대에서 당나귀에 실려 곳곳으로 배달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외국인들의 여행이 가능해지면서 그들을 통한 성경배달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당시 중국의 성도들은 가뭄에 단비를 기다리듯 성경 한 권을 원하였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쪽 복음 한 권씩, 심지어 한 페이지의 성경을 쥐고 암송하던 시국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증과 아픔을 경험했던 중국성도들이 아니고서는 성경을 받았던 그 감격을 알 길이 없을 것입니다.

 

1983년에 중국동북지역의 오지를 방문하며 그들의 갈급함을 알게 된 저는 1985년부터 성경을 본격적으로 배달했고, 그것이 성경을 기다리던 중국성도들에게는 한줄기 샘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중국성도들에게 배달된 성경이 어디로부터, 누구에게서, 그리고 누가 배달하는지를 말해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보안 때문이었고, 또 한편으로 우리 자신들이 스스로의 자랑에 빠지게 될까 두려워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주는 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잡혀 끌려가 매 맞고, 투옥되는 경험을 하면서 중국성도들은 이 성경을 누가 가져다 주는 것일까? 아니 더 구할 수는 없을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배달을 감당하고 있던 선교사가 현장에서 잡혀 추방당했습니다. 그 선교사는 끝내 성경을 공급한 모퉁이돌선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그 후 얼마 동안 성경배달이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추방당한 선교사는 본 선교회에 중국의 특정지역에 성경을 배달해 줄 것을 요청해 왔습니다.

그때부터 성경을 요청하는 지역과 양이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저희는 이것을 감당하기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천 권에서 수만 권으로, 수만 권에서 수십만 권으로 요청받은 성경을 하루하루 감당해 온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1980년대에 성경을 받았던 성도들이 30년이 지난 오늘 교회에 십자가를 세우고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고, 주석성경도 공급받고 있습니다. 성경공부를 위한 자료나 기독서적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자기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성경을 가져다 준 사람들이 누구였을까? 궁금해 하는 것 같습니다.

저희는 여전히 성경을 배달하고 있고, 중국어로 된 서적을 구입해 보급하고 심지어는 책방을 통해 보급하고 있으며, 또 신학교와 교회들이 개척되고 운영되면서 적어도 1년에 한 두 번씩의 중국 방문을 통해, 그리고 그들을 서울과 제주도로 초청해 성경에 기초한 신학과 선교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했던가요? 중국성도들이 깨달아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손에 성경을 전해주기 위해 공안의 눈을 피해 공항을 통과하고, 눈 오는 그 산골까지 찾아와서 성경을 넘겨주고 갔던 이들이 저희들이었음을 말입니다.

그 중국성도들이 자신들에게 생명의 빛과 양식인 성경을 공급해 준 것에 고맙다며 북한성경 배달에 쓰라고 헌금을 모아 손을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믿어지십니까? 그들은 성경배달을 위해 파키스탄으로 신장으로 터키로 이스라엘로 떠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북한에 선교활동을 위한 일들을 서슴없이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난 30년간 여러분들의 헌신이 이렇게 열매가 되어 북한 땅을 위한 일꾼으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기만 합니다.

 

무익한종 이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