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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가 그 십자가에 달릴 때

오~~~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죽어가는 자식을 품에 안고 울어본 일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어머니를 땅에 묻고 울며 돌아서 본 일이 있었습니까?

망해 버린 동족을 위해 통곡하며 울어본 일이 몇 번이었습니까?

저는 지난 30년을 그렇게 울었지만 여전히 버려진 동족을 이끌어 주님 앞에 세우지 못해 울기를 얼마나 했었는지 모릅니다. 기도는 했다지만 여전히 그들은 그 땅에 남아 있어야 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정녕 이것뿐이냐고 통곡하는 제 마음을 하나님은 아실까요?

 

저는 예루살렘에 서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사진 찍고 둘러보는 동안 저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슬픔을 억제할 수 없어 그냥 울어야 했습니다. 올해로 네 번째였던 예루살렘에서의 설교를 마치고 허전해진 가슴을 메울 길이 없었습니다.

여전히 통일이 되지 않아 북한성도를 예루살렘에 데려와 성지순례를 함께 할 수 없음에 울었습니다. 1952년 어머니와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10년 후, 어머니는 제게 다시 “북한에 꼭 가야 해! 거기서 죽어 묻히던지 아니면 끌고 나와 예루살렘으로 가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예, 어머니”하고 대답했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슬퍼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순례 길에 저는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보며 눈물만 흘릴 뿐이었습니다.

 

서울에서 함께 왔던 이들이 떠나고 난 뒤 저는 안내자를 따라 한 언덕을 보기 위해 이동 중이었습니다.

분명한 음성이 제 귀에 들려왔습니다.

“통일을 준비하라!”

순간 저는 아무도 없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앞에는 선교사와 동행인이 앉아 있었고, 옆 좌석에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시계를 보았습니다.

정확히 이스라엘 시간으로 10월 4일 오후 3시 35분에서 45분 사이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통일을 준비하라구요? 어떻게요? 무엇으로요?”

하나님께 계속 질문하는 동안 언덕에 이르렀습니다.

에벤에셀 언덕이었습니다.

에벤에셀!

사무엘상 7장 12절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했던 바로 그 자리에 오게 하시고 제 귀에 들려진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왜 그 자리였을까요?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라는 말씀에서 ‘여기까지’라는 단어를 들려주고 싶으셨던 것일까요?

 

그 곳은 순례자들이 찾지 않는 곳입니다.

안내판도 없고 몇 개의 히브리어로 된 표시만 있을 뿐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통일을 준비하라는 주의 음성을 들어야 했습니다.

왜 그곳이어야 했을까요?

저는 북한성도들을 이끌고 그곳에 가기를 원합니다.

오늘이라도 통일이 되면 저는 북한성도들로 눈을 떠 이스라엘 땅을 보게 해 주어야 합니다.

북한의 한 노인은 제게 물었습니다.

“요즈음 이스라엘이 어떻게 돌아가느냐?”고 말입니다.

저는 그 말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 노인은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리신다고 했습니다.

“천국은 정말 이렇게 힘들지 않겠지?”라고 물으셨습니다.

그 날을 위해 함께 기도할 분들을 찾습니다.

주님 오실 날을 위해 북한 성도들에게 이스라엘을 순례케 할 그 날을 위해…

에벤에셀의 언덕을 함께 걸어올라 갈 그 날을 위해…

함께 기도하지 않으시렵니까?

 

무익한 종 이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