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칼럼] 통일 후 하겠다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서울을 떠나 이틀 밤 미국 집에서 머물고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미국 동남부의 한 작은 한인 교회에서 머물렀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LA로 돌아가 기도회를 인도하고 돌아왔습니다. 이곳에서 주말 집회를 마친 후에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 근처에서 주말 집회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갑니다. 서울에서 집회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왜 이렇게 이곳 저곳으로 다녀야만 하는 걸까요?

 

32년 전 사역을 시작할 때, 저는 하나님께 ‘멀든 가깝든,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부르는 곳엔 어디든지 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어제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목사님으로부터 “30년 동안 모퉁이돌선교회를 위해 기도한 한 분이 집회에 참석하러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변함없이 기도하며 축복해온 성도들, 성경을 얻기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한 분들은 성경이 배달되는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어 합니다. 자신들의 헌금으로 배달된 성경이 그들의 가슴 속에서 어떻게 살아 역사했는지를 듣기 원합니다. 성경배달은 성경학교, 신학교, 교회개척으로, 북한사람들부터 중국의 소수민족들에게까지 확장되어 왔습니다. 중국 기독교인의 수는 남북한의 인구보다 많습니다.
모퉁이돌선교회는 그들에게 성경을 배달하여 공급하는 일을 주 사역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 사역은 중국뿐만 아니라 중동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이 선포될 수만 있다면 어디든지 이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이 일은 실패할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핍박을 당하고, 굶기도 하고, 도망 다니며, 매도 맞고 고문을 당했습니다. 우리 형제 중에는 먼저 천국에 간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기 때문에 이 일을 진행해야 합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군사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군사는 사령관의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가라고 하면 가고 머물라고 하면 머물면 됩니다. 매를 맞아도 잠시 후에는 영광의 주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은 우리의 이웃에게 당연히 주어야 할 사랑을 전하는 일입니다. 증언자로서 자리를 지켜야 할 책임이 제게 있습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게 아닌, 명령에 순종하는 일입니다. 마음에 드니 사랑하고 마음에 안 드니 용서 못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감당하는 일로 인해 순교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사는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런 분들이 오늘도 여전히 살아서 순종하고 있습니다. 피 흘리면서 용서하는 주의 백성들이 있습니다. 저는 중국에서 살아있는 많은 이들과 교제했습니다. 북한에서도 그들을 만나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감옥에서 나가는 것보다 순종을 더 귀히 여기는 사람들을 후원하고 위로합니다.

 

통일을 준비하는 것은
이들을 지금 기억해 주는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들을 품에 안고 기억해 주는 일입니다.
통일 후에 무슨 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오늘, 그들을 위해 주님께 무릎을 꿇어 아뢰어야 합니다. 오늘,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합니다. 오늘입니다.

 

북녘 땅의 사람들은 성경 한 권을 울부짖으며 찾고 있습니다. 양말과 장갑 한 켤레, 따뜻한 모자, 국밥 한 그릇을 그들에게 줄 수 없나요? 저 북한 땅에 잊혀진 동포들,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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