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소식 2017.12. 특집1] 독일통일 모델에서 보는 한반도 통일전략

 

“독일 통일의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한국의 통일이 더 빠를 것이다.”

1989년 10월,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전 독일 총리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2주 전에 서울을 방문해 했던 말입니다. 1969년부터 1974년까지 서독 총리를 역임했으며, 당대 독일통일에 있어 최고의 전문가로 인정받던 그의 확신에 찬 예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정확히 2주 만에 드러났습니다. 이와 같이 한반도의 통일 또한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 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통일의 때를 알 수 없다는 이유로 어떠한 준비도 하지 않고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독일통일은 급작스러웠지만, 내부적으로 정치적·사회적·문화적으로 통일을 위한 움직임이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준비되었습니다.
특별히 동·서독의 교회가 연합하여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이제 우리도 하나님께서 이루실 통일을 준비하며, 과거 독일통일의 역사를 통해 배우고 한반도의 통일전략을 세워가야 합니다.

 

1970년대부터 사회주의 체제는 내부적으로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1985년, 구소련의 제 8대 서기장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통해 소련의 개혁을 본격화했습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소련을 개혁하여 옛 소련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에 포함된 ‘글라스노스트’ 라는 개방정책은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원래 의도와 달리 정치 및 공공의 영역에서 표현과 조직의 자유를 증진시키면서, 정치범들을 석방하고 대중문화 및 예술에 대한 검열을 완화했으며 서구문화를 더욱 개방하기 시작했습니다. ‘페레스트로이카’는 구소련 내부적으로 경제적인 타격을 입히고 갖가지 문제를 발생시키는 등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되지만, 세계 정치 흐름을 크게 바꿔놓으며 결과적으로는 사회주의의 붕괴를 촉발시킨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주의의 큰 흐름은 독일 통일에도 막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통일의 불길이 시작되다!.

 

1983년 가을, 라이프찌히 광장에 50여 명의 청년들이 모여 동서독에 핵무기가 배치되는 것을 반대하는 촛불시위를 시작했습니다. 경찰의 추적을 피해 니콜라이 교회로 피신한 그들은 매주 월요일 6시에 평화적인 정기 모임을 이어나갔고, 1989년 여름까지는 100명 정도의 소규모 집회였지만, 동독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동유럽을 통해 동독을 탈출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을 계기로, 10월 30일에는 약 57만 명이 모였습니다.
당시 라이프찌히의 인구가 55만 명이었으니,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평화적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이 모임은 반정부
시위로 확산되어 드레스덴을 포함해 전국으로 빠르게 번져나가,
11월 4일에는 동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 100만 명의 시위대가
몰려, 자유로운
인간을 위한 자유 언론과 민주주의를 요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놀랍게도 비폭력시위로 진행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실수로 시작된 베를린 장벽의 붕괴

 

1989년 11월 9일, 동독 공산당의 정치국원이었던 귄터 샤보브스키는 동독 내 반체제적인 사람들을 해외로 추방하려는 의도로 만든 새로운 법령을 발표했습니다. 귄터 사보브스키가 “우리는 동독 주민들에게도 해외여행의 자유를 허락하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외신기자 중 한 사람이 언제 그 법령을 시행하느냐고 물었고, 그는 “지금, 즉시”라고 대답했습니다. 새 법령에는 ‘지금, 즉시’ 라는 의미가 없었는데, 귄터 사보브스키의 실수로 인해 새 법령을 발표하는 순간부터 동서독 베를린인들은 국경 검문소로 몰려들었습니다. 본홀머 거리의 국경 수비대장은 반체제적인 사람들만 내보내라는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국경을 자유롭게 개방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다른 곳의 국경도 하나 둘 개방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실수로 촉발된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급기야 동독의 체제 붕괴를 초래했고, 정확히 11개월 만인 1990년 10월 3일, 서독과 동독은 완벽한 통일을 이루어냈습니다. 그러나 1989년 11월 9일의 사건은 우연히 일어났는지 몰라도, 1990년 10월 3일의 통독은 독일이 20년 넘게 준비한 열매였습니다.

 

 

탁월한 정치적 리더십들의 역할이 필요

 

독일통일의 중심에는 헬무트 콜(Helmut Kohl) 총리와 한스 디트리히 겐셔(Hans-Dietrich Genscher) 외무장관이 있습니다. 당시 연방정부로 이루어져 있던 독일은 이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상태였지만,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제법적으로 네 나라의 동의가 필요했습니다. 이에 콜과 겐셔 두 사람은 고르바초프를 찾아갔습니다. 당시 고르바초프는 구소련의 국내 정치를 안정시켜야 했기에 자금이 필요했고, 콜과 겐셔는 동독에서 소련군을 철수하기만 하면 돈을 지원할 수 있다고 고르바초프를 설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고르바초프는 독일 통일에 동의했고, 그때까지 반대했던 영국, 프랑스, 미국까지도 독일 통일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이할 점은, 1982년 헬무트 콜이 총리로 당선되며 과반수 여당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이 다른 기존의 외교장관인 한스 디트리히 겐셔로 하여금 계속해 외교장관의 역할을 맡도록 한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18년 동안 함께 정치를 하며 독일 통일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이루는 일에 노력하고 헌신하며 숱한 난관을 이겨냈습니다.

 

 

모두 함께 눈물의 계곡을 지날 각오가 필요하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구축된 이후, 서독교회는 교계 인사를 석방하고 이산가족을 재결합하는 등 인도주의적인 사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하여, 1962년부터 약 1년 간 100여 명의 정치범을 석방시켰습니다. 이러한 서독교회의 노력은 1963년부터 서독 정부가 정부 예산을 편성해 교회가 정치범 석방에 앞장설 수 있도록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면서, 모든 거래는 비밀리에 이루어져 서독교회가 전면에 나서도록 하였습니다. 주요석방 대상은 분단으로 인한 정치적 박해자들이었으며,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인 1989년 12월까지 계속해서 진행되었습니다. 그리하여 28년 간 33,755명의 정치범이 석방되고, 약 25만 명의 이산가족의 재결합이 지원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통일정책도 이처럼 일관되게 유지되어야만 합니다. 과거 서독에서는 통일에 대해 긍정적인 부분은 당이 바뀌더라도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였기에, 동독에서는 서독이 요구하는 대로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통일정책 또한 정권이 바뀌더라도 북한주민들을 포용할 수 있는 정책을 일관되게 시행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우리가 정치가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지금도 북한에는 예수를 믿는 이유로 정치범수용소에 갇히거나 고통 당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고, 또 조금이라도 체제에 반하는 언행이 발각되면 가차없이 형벌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고통을 남한교회와 성도들이 동일시 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도울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해야 합니다. 지금 북한선교를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독일 통일은 세계 정치적 흐름을 바탕으로 시민들의 의식이 성장하고, 정부적 차원의 노력과 더불어 교회의 지원이 쏟아졌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통일보다 더 앞서 나아가 통합까지 내다보며 기도해야 합니다. 휴전선이 걷히고 통일이 이루어지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모두 함께 눈물의 계곡을 지나야 할 것입니다. 통합은 사회적·경제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남과 북의 주민들이 ‘주 안에서 하나’라는 인식을 가져야 가능한 일입니다.
독일통일의 완성에 대해 사회학자인 랄프 도랜도르프는 다음과 같이 예측했습니다.

 

정치적 통일 완성 1년 :
자유민주주의체제 수립(헌법개정, 토대선거),

경제적 통일 완성 10년 :
사회주의경제 체제로부터 시장경제체제로 이행,

사회문화적 통일 완성 30년 :
민주적, 자본주의 경제의식 함양

 

그러나 실상은 20년 이상을 철저하게 준비했던 서독이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경제적 통일을 완성하지 못했고, 사회·문화적 통일은 2세대 즉 60년 이상이 지나야만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만큼 통일 이후에도 남북한의 통합에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통일에 대해 절망하거나 비관하지 않을 것은, 한반도의 통일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 하나님의 손에 들려져 진행되고, 하나님께서 완성하시도록 내어드릴 때,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믿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에 힘을 얻어, 통일을 위해 계속 기도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일 때, 한반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동방의 예루살렘이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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