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 칼럼] 17년 넘게 지하교회를 이끌어 갔습니다!

 

6·25 전쟁이 일어난 1950년 6월부터 1953년 7월까지 한반도는 피바다였습니다. 1953년 7월 27일에 휴전이 되고 전쟁은 끝났지만 남한 교회는 먹고 살기에 급급하여 선교라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교는 돈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가난과 피 흘림이 있었다고 선교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닙니다. 스데반이 순교 당한 후 바울은 천막을 기워가며 자비량으로 선교했습니다.

 

최근 북한선교의 열정이 식어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말들합니다. 그러나 북한선교의 열정이 식어 버린 게 아니라 교회의 열심이 식었고 선교와 전도의 열심이 식어버렸습니다. 교회에 젊은이들이 줄어들고 노인들만 앉아 있는 곳이 많습니다. 당연히 북한선교의 열정이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북한선교만을 위해서 일한 지난 35년 동안 저는 통일이나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서 일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저의 삶 전체를 순종했을 뿐입니다.

 

24년간 가난 속에서 북한을 드나들며 복음을 전했던 한 할머니는 12가정을 전도했습니다. 순희 할머니가 바로 그 분이십니다. 그녀는 그러고도 17년 넘게 그 땅에 살면서 지하교회를 이끌어 갔습니다. 가난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있던 중, 2004년 4월 22일에 용천 기차역의 폭발로 인해 온 가족이 주님께로 가야 했습니다.
배신으로 인하여 고발당한 17세의 청년이 수용소로 끌려간 것은 28년 후의 일입니다. 지하교회의 지도자였던 그는 고발당한 후 “나를 석방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말라”고 알려왔습니다. 그 노력으로 북조선 땅의 십자가가 세워지기 위해 노력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공산주의에 속했던 동독의 성도들도 북한 땅에서 예배하고 전도했습니다. 일본의 제일동포들이 북한으로 북송될 때 성경을 가지고 갔습니다. 소련의 군인들 중에도 북한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었고, 중국의 한족들과 조선족들이 북한 땅에서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헝가리와 핀란드의 하나님 백성들 중에도 북한 땅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기도 했습니다.

 

북한선교를 위해 일하고 있는 이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지금 북한선교를 위해 수고하고 있지만 그 동안 공개하지 못했던 나라들을 살펴보면 적어도 5개의 중국 소주민족이 북한선교에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시진핑에 의해 제한받지 않습니다.
아베 때문에 일본선교를 중단하지 않습니다. 베네수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졌지만 그 곳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북한에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기를 위해 일합니다. 핀란드도 북한선교를 중단한 일이 없습니다. 몽골이 북한선교를 한다구요? 당연합니다. 말레이시아도 열심이고, 헝가리와 남미의 브라질이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습니다. 과테말라나 에콰도르가 빠질 수가 없고,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북한선교를 하는 것은 오래전부터입니다. 미국이나 영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는 소리 없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북한으로 보낼 성경과 풍선을 보내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그들은 부자라서 선교하는 걸까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증언하고, 예배하고, 예수의 사랑을 전하며 선교합니다. 피부 색깔이나 언어는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인종과 상관없고 국적과도 상관없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본분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기 때문에 명령을 따라 수행할 뿐입니다. 머물러야 했기에 머물렀고, 가라고 했기에 갔을 뿐입니다. 용서하라고 했기에 용서했고 사랑하라고 하셨기에 사랑했습니다. 주라고 했기에 퍼주었고 희생하라고 하셨기에 희생했을 뿐입니다. 병사로 보냄 받았기에 병사로서 살았고 제자의 도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기에 그 길을 갔을 뿐입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당신은 당신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내 형편이 좀 나아지면 선교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순종만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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