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껍데기만 덜렁 남아 있었어요.
종이는 약간 도톰했는데 그 위에 글자 네 개가 선명하게 박혀 있더군요.
주기도문.
누군가 성경을 가지고 가다가 버린 것일까?
아니면 들킬까 봐 알맹이만 가지고 간 것일까?
주기도문과 마주한 장에는 십계명의 제5계명부터 나와 있었어요.

 

그것이 다였어요.
알맹이가 없을 따름이었죠.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다 사라지고 주기도문과 십계명 반쪽만 있었으니까요.
그거라도 발각되면 어찌될지 몰라서 숨겨 두고 가끔씩 꺼내 읽는 게 전부였어요.
다 외웠지요.
그러면서 알맹이를 구할 수가 없을까 몇 년째 주님께 아뢰고는 했어요.

 

이번에 중국에 와서 제일 먼저 구한 게 성경이야요.
제가 갖고 있는 껍데기-주기도문과 십계명 반쪽-하고 크기는 다른데, 하나 손에 넣었어요.
그 알맹이 성경을 밥 먹고 변소 가는 시간 외에는 며칠을 죽으라고 읽었어요. 며칠을요.
료해(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많지만 무조건 읽었어요.
마음이 후련해요. 알맹이를 먹어서요.
아, 죄송해요. 성경을 읽을 수 있어서요.
근데요, 제게 성경을 주신 분은 아주 근사하고 큼직한 가죽으로 된 걸 갖고 계시대요.
슬쩍 슬쩍 보다가 용기를 내서 그걸, 죄송해요 그거라고 해서요, 구할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새 것을 내 주시더라고요.
그러시면서 “가지고 갈 수가 있겠나?” 혼잣말처럼 하시는데…
“마지막 순간에 못 가지고 가면 그 땐 그 때고, 가는 날까지 읽을 거라요!”라고 말씀드렸어요.
“선물이랑 돈이랑도 만들어 가지고 가야 갔는데… 이걸”
아이고 내 버릇 좀 봐, 또 이거라고 했네요. 성경 읽느라고 마련을 못했네요.

 

여행비를 줄이기로 하고 5백 달러를 손에 쥐어 드렸습니다.
더 드리지 못한 것은 내 수중에 있는 게 그것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이웃들에게 부탁하여 필요하다는 선물을 모두 만들어 드렸습니다.
그분은 중국에 머무는 동안 영생을 얻었고, 그 성경은 친척에게 맡기고 북한으로 돌아갔습니다.
어찌 되었는지… 살아 있는지…
나는 그 아주머니를 위해 무엇인가를 더 할 수는 없었을까요?
내 골육인데…

 

무익한 종 이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