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배달의 어리석음을 핀잔하며 욕하는 교단의 목사들을 경험했습니다. 성경 한 권을 얻기 위해 울며 기도하던 이들이 받아 든 성경이 과연 어리석음의 결과였을까요? 그들은 기뻐했고 감사했으며 결과적으로 중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 말씀이 누룩처럼 번졌습니다. 아닌가요? 중국 기독교인 수가 1억이 넘었다는 보고가 거짓인가요? 하나님의 능력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존 로스 목사는 바보짓을 했군요. 토마스 목사는 멍청이네요. 하디, 아펜젤러, 언더우드는 미련한 사람들이었군요. 하나님의 나라는 누룩처럼 보이지도 인정받지도 못하면서 여전히 번져갑니다. 열두 명의 제자들로 인해 온 세상에 십자가 나무 이야기가 확산되었잖아요. 그 뒤를 따르는 분들이 바로 여러분이고요. 오늘날 한국 땅에 전해진 그 복음을 위해 피 흘리며 죽어간 자들 외에도 수고한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양화진에만 선교사들의 무덤이 있나요? 남한 땅 곳곳에 묻힌 선교사들은 어리석음의 극치이군요. 여러분들도 그런 어리석음의 열매이지요?

 

저는 지금 강화도 훈련원에서 북한 땅이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 시간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들 북한 땅의 성도들은 여러분과 제가 자기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알까요? 모를 테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어리석음의 극치를 걷고 있는 우리의 이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저는 궁금한 게 있어요. 그때 판문각에 앉아서 제 설교를 듣고 있던 16명 북한인들의 심령 속에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을까? 그 소좌(중좌) 말고 다른 이들은 제 말을 어떻게 새겨 들었을까? 평양 고려호텔 안에 있던 6명의 당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기차 안에서 나누었던 그 한 청년은?

 

중학생 시절 저를 만난 소년이 이제는 목사가 되어 저를 초청합니다. 고등학교 시절과 대학 시절, 그리고 신학교에서 도전 받은 이들이 지금은 선교사로 일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구브로(사이프러스)에서도 만났습니다. 월남에서도 만났습니다. 아니 서울에서도 전국 각지에서 용기 있게 악수를 청하는 이들이 바로 이런 이들입니다.

 

제주도에서 만난 한 미국 여인은 저를 11월 하버드 대학이 있는 보스턴 자기 교회로 청하겠다고 합니다. 제가 한 일을 나누었을 뿐이었는데요. 성경 배달 말입니다. 이런 어리석음의 극치를 걷는 결과가 무엇인가요? 하나님 나라의 확장입니다.

 

하나님이 모퉁이돌과 저에게 그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기회를 주시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공산권만 아니라 아랍권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역사가 일어나고 있음을 저는 보고 있습니다. 러시아나 몽골에서도 같은 축복(고난)의 길을 걸으며 기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제자들이 고난 받음을 영광으로 여긴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중국에서, 러시아에서, 북한에서 전했던 그 복음의 씨앗들이 열매를 맺었습니다. 뉴질랜드에서 원주민을 만나 복음을 나누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울면서 고맙다고 제 잔등을 두드려 주었습니다. 누룩처럼 온 세상에 확산될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 여러분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성경 배달로, 기도로, 재정 후원으로, 선교사 섬김으로… 오늘 여러분과 제게 주어진 바보 같은 어리석은 일은 성경 한 권을 보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무익한 종 이삭

 

[2019.08 카타콤소식 ‘이삭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