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부활절 달걀을 받았다

 

“해마다 4월이 되면 할머니가 계란을 나눠 주셨어요. 재미있는 이야기도 같이 들려 주셨는데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몰랐어요. 여기 남한에 와서 교회에 가 보니까 부활절에 달걀을 주더라고요. 그리고 설교를 듣는데 할머니가 하셨던 말씀과 너무 똑같아서 소름이 쫙 돋았어요. 또 하루는 할머니가 일하면서 흥얼거리던 곡조가 찬송가로 흘러나와서 깜짝 놀라기도 했어요.
저희 할머니는 새벽 기도를 하셨어요. 꼭두새벽이면 일어나서 꼬챙이 하나 들고 불을 때셨는데, 딱딱 나무 타는 소리에 맞춰 ‘사르르 스습습스’ 하면서 다른 사람은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를 내셨어요. 할머니는 식구들이 제사 지낼 때도 혼잣말을 하곤 하셨는데 추측하기로는 회개 기도를 하셨던 것 같아요.
할머니에 대한 또 하나의 기억은 할머니가 주머니를 털어서 꽃제비에게 돈을 쥐어 준 거예요. 그 일로 아들에게 죽어라 욕을 먹었죠. 어머니는 자식들 생각은 안 하냐고, 장사 밑천도 안 남기고 가진 돈 전부를 주면 어떻게 하냐고 쓴소리를 해댔어요. 할머니는 그렇게 자식들에게 천대와 멸시를 받으면서도 주변에 배 곯는 사람이 있으면 늘 베풀곤 하셨어요. 믿음이 없었다면 그런 행동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철두철미하게 믿는 신앙인이 분명히 있다

 

“모르긴 해도 제 이야기에 공감하는 북한 분들이 꽤 있을 거예요. 북한에는 1호 작품이라고 김일성 부자 초상화가 벽마다 돌아가면서 붙어 있어요. 그림이 부족하면 김일성, 김정일이라고 글이라도 써서 채워 놔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초상화에 손상이 가 있었어요. 천인공노할 일이죠. 북한에서 살 때는 막연히 남조선 간첩이 한 짓이겠거니 했어요. 그런데 멀쩡한 간첩이 초상화 하나 훼손하려고 북한에 침투하겠어요? 그렇다고 평범한 북한 주민들이 그런 일을 벌일 리 없잖아요. 기독교인밖에는 없어요. 우상 숭배는 기독교에서 죄니까 초상화에 금을 확 그어버리는 거죠. 그렇게 손상 사건이 발생하면 그 지역은 집중 감시 지역이 돼요. 사람들이 어디로 몇 시에 이동하는지 철저하게 조사하고 의심 가는 부분은 신고하게 만들어요. 까딱하면 목숨이 달아날 판인데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그런 행동을 하니 참 대단하다 싶어요. 그리고 저희 할머니는 평생 한 동네에서만 사셨어요. 거기는 모든 사람들이 떠나기를 원하는 곳이에요. 왜냐면 6·25 때 한국으로 넘어가고 남은 가족들, 소위 북한에서 말하는 감시자 가족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거든요. 어떤 희망도 발전도 기대할 수 없는 곳이었죠. 제가 평양에서 지방으로 추방당해서 할머니와 함께 지낼 때 할머니가 ‘동네에서 똑똑한 사람들은 전쟁 때 다 내려갔다’는 말씀을 해 주셨어요. 즉 기독교인들이 살았고 지금도 기독교인들이 남아 있는 동네인 거죠. 그 이유 때문에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그곳을 벗어나지 않으신 게 아닌가 생각해 봐요.”

 

한국 목사가 북한 가정집에 들어가 예배를 인도했다

 

“워낙 극비로 나온 분들이라 이제는 얼굴도 가물가물해요. 그분들은 5분, 10분 이내로 잡힐 것 같은 절박한 상황에서 탈출하셨어요. 목숨이 경각에 달린 그 짧은 시간에 전력질주해서 숨었다가 추격을 따돌리고 국경을 넘어서 간신히 보위부의 손을 벗어났어요. 진짜 하나님이 살리신 거예요. 그분들은 옛날부터, 그러니까 6·25 때부터 믿음 생활을 했다고 하시더군요. 당시 아파트 지하에 십자가를 걸어 놓고 가족끼리 예배를 드렸는데 나중에 다른 한 가정이 더 합류해서 예배했다고 하더라고요. 북한에서 전도를 하고 예배한다는 건 기적이에요.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한국 목사님이 예배를 인도했다는 점이에요. 예배할 날이 되면 한국 목사님이 뇌물을 주고, 북한 국경을 넘어서 그 집에 들어가서 예배를 집도했대요. 나왔다가는 다시 들어가고, 그런 식으로 하다가 걸리고 말았어요. 어떻게 안 걸리겠어요. 목사님이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그분들은 도망쳤어요. 아버지와 오빠는 잡혔고 모녀만 극적으로 탈출한 경우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하셨다

 

“탈북 도중 혜산시에서 붙잡혔어요. 보위원 6명이 제 팔을 옴짝달싹 못하게 잡는 순간 이젠 죽었구나 싶더군요.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때마침 휴대폰 벨이 울렸어요. 보위원이 증거를 잡으려고 ‘받어’ 하고 전화기를 들이대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제 입에서 엉뚱한 말이 튀어 나왔어요. ‘거기 단둥이죠? 우리 엄마 바꿔줘요. 엄마가 조국으로 돌아온다고 해서 내가 지금 가고 있으니까 빨리 바꿔요.’ 그 한 마디로 저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탈북한 엄마를 잡으러 가는 아들이 됐어요. 그때부터 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술할 수 있어서 8일 만에 풀려났어요.
이 일이 있기 전 저는 노동단련대 6개월형을 선고 받았어요. 단련대에 입소하면 간수들이 기선 제압에 들어가요. 첫날은 벽 삼 면 가득 보안성 헌법을 잔뜩 써 놓고 그날 다 외우라고 해요. 저는 암송을 못하는 편인데 어떻게 그건 잘 외웠어요. 그 일을 계기로 학습 반장이 됐고 또 얼마 안 있어서 수감자들 작업을 조직하는 반장이 됐어요. 당시 저는 제 조직적 수완이 대단하다고 스스로 감탄했는데 그 일들은 기적이었어요. 반장을 어떻게 아무나 하겠어요.
제가 한국에서 기도하던 중에 북한에서 겪은 일들이 필름처럼 지나갔어요.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갇히고 거기서 살아남은 과정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이끄심이었구나, 주님이 이때 나를 구해 주셨구나. 성령님이 이렇게 하셨구나 하는 것들이 깨달아졌어요. 그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요. 성령님이 나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열정과 담대함을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모든 일들이 너무 놀라워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얼마나 소리질렀는지 몰라요.”

 

탈북행전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그리다

 

“탈북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주변 탈북자들에게 이야기하면 너무 아무렇지 않게 들어요. 한편으로는 그들에게는 일상적인 일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한편으로는 참 가슴이 아파요. 본인들이 어떤 은혜를 받았는지 모르는 거잖아요. 답답한 마음에 ‘하나님이 도우셨다’고 말하면 대개는 운이 좋았다는 반응이에요. 운이 좋은 것도 한두 번이지. 이것도 운, 저것도 운이면 설명할 길이 없어요. 하루는 저를 비롯한 탈북자들의 경험을 어디에선가 간증을 하고 있었는데 그걸 들으시던 한 분이 ‘내가 지금 탈북행전을 보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탈북행전’이라는 단어를 듣고 제가 무릎을 탁 쳤어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래요. 제가 이걸 해야 하는군요.’라는 고백이 절로 나왔어요. 탈북자들의 삶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기록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들이 북한을 출발해서 한국으로 오는 과정은 마지막 하이라이트일 뿐이에요. 탈북 과정에서 이적이 있었던 사람은 분명 북한에서 살 때도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어요. 저는 그것이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그림, 짜임새로 잘 표현하면 돼요. 만화로 영혼을 살리는 일이 제 사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