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도 구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 전파는 예수 믿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구제가 아닌 복음 전하는 선교에 집중해야 합니다.”
지난 35년 동안 모퉁이돌선교회 사역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된 이삭 목사의 주장이다. 특별히 복음이 제한된 상황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를 함에 있어서 구제는 현실적으로 필수 요소처럼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선교 현장에서 사역하는 일꾼들은 늘 복음이 아닌 구제 중심의 사역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경계한다.
지난해 말 선교 현장에서 막 돌아온 일꾼으로부터 북한 선교 사역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북한 안에서 믿는 자들이 구제와 함께 복음을 전해 많은 영혼들을 주께로 돌이키고 있다는 놀라운 소식이었다. 얼른 듣기에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자신의 배만 불리지 않는 북한 성도들

 

“간사님, 북한 교회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자고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알리면 안 될까요?”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모퉁이돌선교회는 구제 중심이 아닌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고, 그걸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북한 주민들도 정말 힘들지만, 누구보다 북한 성도들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북한 성도들에게 구제품을 보내면 어떻게 사용되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절대로 혼자서 자기 배만 불리지 않아요. 어떻게 해서든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고 그렇게 사랑이 나눠지는 과정에서 복음이 전해진단 말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자세히 설명해 보세요. 그런 내용이 있으면 얼마든지 북한 선교에 구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자 일꾼은 목청을 높여 몇 년 전 훈련을 받고 돌아간 한 성도가 북한에 돌아가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것을 내어 주며 예수를 따라가다

 

“정말 너무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쌀과 강냉이 국수, 땔감, 부식물이 약간씩 든 꾸러미를 건네받은 김 씨 아줌마는 연신 고맙다는 인사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이내 말끝을 흐리더니 고개를 떨구고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선희(가명)는 얼른 김 씨의 손을 잡으며 그러지 말라는 듯 그녀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하나님이 내 마음에 자꾸 가져다 주라고 해서 그런 것이니 미안해 하지 않아도 돼요. 하나님이 주신 것을 나는 전달만 할 뿐이에요.”
속삭이는 듯한 미세한 음성이었지만 하나님이라는 분명한 표현에 김 씨는 감정이 복받쳐 올라 더욱 서럽게 울었다. 선희는 그런 김 씨의 등을 한동안 말 없이 토닥였다. 어느덧 남편이 돌아올 시간이 된 것을 알아차린 선희는 얼른 집으로 갈 채비를 했다.

 

집 앞에 당도했을 때 주위에는 땅거미가 깔려 있었다. 곧 캄캄한 어둠이 엄습할 시간이었지만 집에서는 불빛 하나 새어 나오지 않았다. 좌우를 분간하기 어려울 텐데 선희는 익숙한 듯 성큼성큼 집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방문을 열고 막 앉으려던 찰나 남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선희의 귓가에 꽂혔다..
“아니, 늦은 시간에 어디를 쏘 다니는 거야. 또 쌀 퍼 주고 왔어?”
달포 전쯤 밧데리가 나간 방은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비록 보이지 않지만 남편의 노기 띤 얼굴이 눈앞에 생생하게 아른거리는 것만 같았다.
“말 못하는 거 보니 맞구먼.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돈 거 아냐. 사람이 제 주제를 알아야지. 우리도 먹을 게 모자라는 판에 누구한테 쌀을 갖다 주고, 불도 못 떼면서 누구한테 탄을 갖다 줘? 나, 원 참. 기가 막혀서. 진짜 불쌍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네. 하루에 2kg는 벌어야 우리 식구 배는 곯지 않는 마당에. 요즘 강냉이쌀 1kg밖에 못 사 오는 거 안 보여. 장마당 벌이가 영 시원찮다고. 그런데 당신은 걸핏하면 꽃제비 아이들 집으로 데리고 와서 밥을 먹이지를 않나, 잠을 재우지를 않나, 새 옷으로 갈아 입히지를 않나. 아니, 그 옷이 어떤 옷이야. 우리 애들 크면 입히려고 장롱 안에 넣어 둔 거 아냐. 아끼고 아껴서 따로 챙겨 놓은 건데… 내가 집안에 도둑을 뒀지. 도둑을 뒀어!”

 

불 같이 후려치는 호통을 묵묵히 듣고 있던 아내는 남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간신히 입을 뗐다.
“미안해요. 동네에 밥 못 먹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거기 들려 오느라고 늦었어요. 당신이 오기 전에 빨리 갔다 온다는 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집에 있는 쌀 조금이랑 언니가 농사했다고 보낸 고구마 몇 개 챙겨 줬어요. 여보, 비를 내려서 농사를 짓게 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잖아요. 그러니 우리에게 량식이 이렇게 있는 거고… 사람이 아무리 농사를 잘 지으려고 노력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안 되잖아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량식 중에서 조금만 떼어서 나누면 여러 사람이 배고픔을 달랠 수 있어요. 방금 다녀온 그 집 아줌마도 얼마 안 되는 쌀을 받아 들고는 어찌나 좋아하고 고마워하던지, 내가 다 행복해졌어요. 이렇게 사는 게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길이라고 저는 확신해요.”
선희는 자신의 진심이 남편에게 전달되길 바라며 간절히 남편의 눈을 응시했다. 그러나 남편의 화는 가라앉기는 커녕 도리어 불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돋워졌다.
“입만 열면 하나님! 하나님! 지금 당신 꼴을 좀 봐. 그런 말이 어떻게 나와? 지금 누굴 걱정할 때야? 남이 신다 버린 양말 기워서 누더기를 신으면서. 불쌍하다고 그렇게 막 퍼 주다가 우리가 정작 필요할 때 없으면 어떻게 할 작정이야? 어리석은 짓 당장 그만 둬. 그러다 나중에 자식들한테 원망 들어. 아니, 하나님 믿으면 다 그렇게 해야 해? 사람이 아주 이상해졌어. 그것도 병이야. 병….”

 

남편의 타박에도 선희는 꿋꿋이 할 말을 이어갔다.
“저에겐 이 양말도 너무 좋아요.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사는데 뭐가 부족하겠어요. 쌀도, 탄도, 양말도 모두 하나님께 받은 걸 나눴을 뿐이에요. 하나님은 저를 특별히 사랑해 주셨어요. 그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라는 거지,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라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강냉이 밥만 먹어도 족해요. 당신과 아이들에게 강냉이 밥을 줘서 미안해요. 그렇지만 그것도 없어서 못 먹는 사람도 많잖아요. 하나님이 위에서 언제나 내려다보고 계신데 혼자만 호의호식할 수 없어요. 저는 하나님을 속이는 일은 할 수가 없어요. 제 량심이 허락하지를 않아요. 여보, 우리 조금씩 남들을 배려하며 살아요.”
결국 자신의 눈을 피해 계속 가난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아내의 말에 남편은 그만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한 남편에게 아내의 다음 말이 들려왔다.
“사실, 제 마음에는 무거운 짐이 있어요. 하나님과 약속한 바를 지키지 못하고 있거든요. 그건 십일조와 관계된 문제인데 우리로 말하면 당원이 당비를 내는 것처럼 수입의 십 분의 일을 하나님께 바쳐야 해요. 그런데 저는 다달이 버는 돈이 한 푼도 없잖아요. 십일조를 할 수가 없는 이런 조건 하에서 그나마 어려운 이웃들과 나에게 있는 음식을 나누는 것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고 있어요. 저는 항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예상치 못한 아내의 대답에 남편은 아내의 믿음이 저렇게 깊었나 싶어 다시 한 번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제만 해도 밧데리 수명이 다 된 컴컴한 방에서 차라리 밤이 없으면 좋겠다고 두런두런 넋두리를 늘어놓던 아내였다. 그런데 십일조와 감사를 이야기하는 지금의 아내는 본인이 알던 사람이 아닌 것만 같았다. 하나님을 믿더니 자기와는 딴 사람이 되어 버린 생소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대하는 진심 어린 태도는 정말 감탄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믿는 사람은 다르구나, 그런데 무엇 때문에 믿게 된 거지, 믿음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이런 저런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이 남편은 문득 아내가 믿는 하나님이 조금 더 궁금해진 느낌이었다. 남편이 골몰해 있자 아내는 저녁상을 내오기 위해 서둘러 일어났다. 창문으로 은은한 달빛이 비쳤다.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방안에서 헛기침 소리가 간간히 들릴 뿐 부부의 고요한 침묵은 한동안 이어졌다.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을 나눌 때 임하는하나님 나라

 

선희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주위 사람들과 자신의 것을 나눈 것이 아니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자신을 위해 하나뿐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피 흘려 죽이기까지 사랑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여서 나눈 것이었다. 그래서 본인도 먹을 것, 입을 것이 부족한 빠듯한 살림살이임에도 기꺼이 이웃과 나누며 하나님의 사랑을 삶 속에서 실행하였다. 그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잇속을 챙기지 못하고 퍼주기만 하는 선희를 ‘머저리’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런데 어찌하랴,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그의 마음에 자신의 것을 내어 주고 내어 주어도 더 주고만 싶은 것을….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대부분의 북한 성도들은 선희와 같은 삶을 살아간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이웃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을 전할 많은 기회들이 마련된다는 것이다. 선희는 지난 몇 년 동안 남편과 자녀들은 물론이고 이웃에 복음을 전해서 30여 명을 전도하였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발각되면 온 가족이 멸족을 당하는 참혹한 북한의 현실 속에서 한 해에 예닐곱 명씩 믿음을 갖도록 전도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 선행되는 것이 바로 구제이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어려운 환경에서 누군가 조건 없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을 본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저 고맙게만 여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북한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거듭되면 “어떻게 자신의 것을 저렇게 아낌없이 나눌 수 있는 거지?”라고 주의 깊게 생각하며 신뢰 관계가 형성된다. 바로 그때 복음이 전해져 믿음을 갖는 역사들이 일어난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이 심장에 인같이 새겨진 북한 성도들에게 구제는 복음을 전하는 데 그 어떤 것보다 좋은 통로가 될 수 있다. 구제를 통해 북한 지하교회가 개척되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2020년에도 말씀에 굳게 서서 믿음을 지키며 성령이 충만한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이 북한 땅에 퍼져 나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이 일에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참여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복음 통일의 날을 앞당길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