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특집 1] 황폐한 땅에서 믿음의 씨앗이 되어 살아가는 북한 성도 이야기[2019.5]

 

봄빛이 산과 들에 한창 무르익던 어느 날, 두툼한 편지 하나가 한 일꾼을 통하여 배달됐다. 발신인에는 김OO라고 쓰여 있었다. 꽤 익숙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기억 속에 각인된 얼굴 하나가 또렷이 떠올랐다.
몇 년 전 이곳에서 성경을 공부하고 목사 안수를 받아 북한에 선교사로 파송된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같이 생활하며 함께 웃고 울고 기도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북한에 들어간 이후로는 소식이 뚝 끊겨 버렸다. 그렇다고 우리 쪽에서 먼저 편지를 보내거나 생사 여부를 확인할 방도가 없었기에 그냥 연락이 두절됐으려니 생각하고 내심 포기하던 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느닷없이 그녀에게서 편지가 날아든 것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봉투를 뜯었다. 시원하고도 정갈하게 쓴 글씨가 종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행여 글자 하나라도 놓칠세라 조바심을 내며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편지에는 비교적 소상히 적혀 있었다. 북한에 도착해서 어떻게 살았는지,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땅에서 어떻게 기도했는지, 하나님을 어떻게 알렸는지 등등.
어떤 대목에선 이렇게 용감하게 행동을 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어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고, 어떤 대목에선 정말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싶어 놀란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녀의 삶을 이끌고 있다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녀가 전한 내용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가족을 전도하고, 손주에게 세례를 베풀어서 믿음의 가정을 이룬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일부 내용만 추려서 이곳에 소개한다.

 

선생님,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글월 한 장 올리지 못하고 벌써 수개월이 흘러 버렸네요. 선생님께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좀처럼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몇 개월 동안 감감무소식인 저 때문에 선생님께서도 마음 많이 졸이셨지요? 고향에 돌아온 이후로 저에게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걸 낱낱이 적으려면 한이 없기에 하나님께서 저희 가족에게 베푸신 커다란 은혜 두 가지를 글귀에 담아 보냅니다.
제가 그곳에서 머물 때 저희 남편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매일같이 술 퍼 마시고, 걸핏하면 주먹질을 해댄다던. 그 남편 제발 사람 되게 해 달라고, 정당하게 일을 해서 생계를 책임지게 해 달라고 새벽마다 부르짖곤 했었지요.
조선에 돌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과 그만 큰 싸움이 붙었습니다. 그날 남편은 취기가 잔뜩 올라 몸만 겨우 가눈 상태로 대문을 열었습니다. 평소 뭐가 그리 못마땅했던지 제 옆에 붙어서 사사건건 생트집을 잡으며 잔소리를 늘어놓았습니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제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해졌고 언성은 점점 높아졌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격한 감정이 올라오면서 이 모든 일들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졌습니다. 그 길로 문을 콱 박차고 나왔습니다. 속으로 ‘내가 이 놈의 집 구석에 다시는 들어오나 봐라. 그러면 내가 인간도 아니다’라고 씩씩거렸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또 어디를 가고 있는지 향방도 모른 채, 발길 닿는 대로 무작정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무심결에 하늘을 올려다 봤습니다. 난데없이 새파란 하늘에 새하얀 십자가가 그어지는 형상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분명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었는데 어디서 새털 구름이 몰려와 세로가 긴 십자가 형태를 만든 것인지… 지금도 모를 일입니다.
전후 사정이야 어찌 됐든 하늘에서 구름 십자가를 본 순간 저는 감전이라도 된 냥 그만 그 자리에 우뚝 서고 말았습니다. 몸에서 3,300 볼트짜리 전기가 지나가는 듯한 전율이 흘렀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저를 꾸짖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내가 이러면 안 되지. 하나님께서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은 나를 위해 온갖 모욕과 고통을 참고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하나님은 견딜 만한 시험 외에는 주시지 않으시는데, 남편이 아무리 심한 술주정을 해도 고통을 참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랑으로 품어봐야지.’라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회개한 후 저는 곧장 몸을 돌이켜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남편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바로 금식 기도로 들어갔습니다. 5일쯤 되자 입술이 갈라져서 부풀어 터지고 볼은 사정없이 훌쭉 패였습니다.
금식하고 달포 만에 남편이 돌아왔습니다. 따뜻한 밥 한 술 지어 얼른 상을 내왔습니다. 물끄러미 상 너머를 보던 남편이 대뜸 ‘나 죽다 살아 났소’ 합니다. 내용인즉 술을 마셨는데 갑자기 목이 막히고 호흡 곤란 증세가 와서 보름 넘게 술을 입에도 못 댔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마터면 할렐루야 소리가 나올 뻔 했습니다. 천하의 술고래를 하나님께서 한순간에 바꿔 놓으신 겁니다.
이 사건이 있고 남편은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제법 수완이 좋아서 이제 밥 굶을 걱정 없이 살고 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착실해진 남편 모습에 다들 부러워하며 한 마디씩 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에게 간절히 기도하면 반드시 들어주신다’라고 외치고 싶은데 겨우 참고 있습니다.

 

남편이 새 사람이 되고 나서,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큰 행사를 치르기 위해서였습니다. 저와 남편,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 손자와 손녀, 이렇게 온 식구가 모여 세례식을 거행했습니다. 어린 아이부터 늙은 노인까지 가족 중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각자가 가진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 입었습니다.
예식에 앞서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와 하나님께 자기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름과 나이, 하는 일, 신앙을 갖게 된 계기, 믿음의 표현 등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고, 제가 마지막으로 그동안 집안 전체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일전에 “조선에 가거들랑 세례를 주십시오. 아이들, 특히 손자 손녀는 무조건 다 주십시오.”라고 저에게 말씀하셨지요. 또 “유아 세례는 부모의 믿음을 보고 아이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라고도 이야기하셨지요. 드디어 이 날, 저는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손주들에게 유아 세례를 집례했습니다. 비록 저희 아들과 딸이 정식 교회 직분을 받은 건 아니지만, 저희 손주들은 엄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의 자녀이고 할머니가 목사인 만큼, 저희의 신앙을 하나님께 대신 약조하는 것으로 유아 세례식을 진행했습니다.
세례식 자체는 조촐했습니다. 대야에 세숫물을 떠 놓고 손주들을 세수시키는 척하며 아이들 머리 위에 물을 뿌렸습니다. 그러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라고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습니다. 남들이 봤다면 우리가 뭘 하는지 아마 몰랐을 겁니다. 설사 세례식이라고 귀띔해 줬다 해도 ‘그게 무슨 세례식이야’라는 핀잔을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별스럽지도, 눈에 띄지도, 그래서 초라하기까지 한 의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에게는 남들이 모를 감격이 있었습니다. 북받쳐 오르는 뜨거운 그 무엇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가족 중에서 제가 처음으로 예수를 믿고, 한 명씩 전도해서 이제는 믿음의 일가를 이뤘습니다. 가족과 성경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을 스스럼 없이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가족이 합심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 안에서 뜻이 통하니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가 마치 부족한 것처럼 하나님은 손자와 손녀에게까지 세례를 베풀게 하셔서 대를 이어 믿음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이날 제가 하나님께 맹세를 했습니다. “이 아이들을 훌륭한 주님의 종으로 키우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제가 마땅히 이 땅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 땅에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지는 것만큼 세례가 중요합니다. 교회는 날마다 세례가 일어나야 합니다. 세례가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세례식을 통해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죄사함을 받고 거듭남을 고백합니다. 북한에서 자체적으로 세례를 주는 일이 지금보다 늘어나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오늘따라 자꾸 귓가에 맴돕니다. 항상 선생님과 선생님께 배운 하나님을 마음속에 새기고 있습니다. 비록 몸은 세상에 머물러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로 부끄럽지 않게 하루 하루 살아가겠습니다.
조만간 또 소식 드릴 것을 약조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OO 드림

 

편지는 이미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터였지만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어 다시 한 번 찬찬히 눈으로 훑어 본다.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던 남편, 집에서 뛰쳐나가 방황한 아내, 그때 계시처럼 하늘에 그어진 십자가, 예수님이 자신을 사랑한 것처럼 남편을 품겠다고 결심한 아내, 5일간의 처절한 금식 기도, 그리고 기적적으로 술을 끊고 새 사람이 된 남편… 편지 첫 장에 담긴 내용은 두 번째 읽어도 희석되지 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김OO는 그 십자가를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고 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물과 피를 쏟으면서 십자가를 지셨는데 자신은 고작 남편의 술주정 버릇 하나 견디지 못해 가출하고 말았으니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울 따름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못난 자신을 십자가로 책망하시고 회개케 하셔서 기도에 응답하시니 그 은혜를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탄복했다.
편지 뒷장에 실린 세례식은 북한 땅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움을 금치 못할 사건이다. 비록 자신의 손주이긴 해도 북한 사람이 직접 북한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이야기는 북한 교회가 내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라고 옆 사람에게 말하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한 곳이다. 그만큼 전도는 물론 제대로 된 선교 활동을 하기가 어려운 금단의 땅이다. 국외에서 성경을 공부하고 목사 훈련을 받아서 그 땅에 파송받은 사람이라도 막상 세례를 베풀려면 믿음의 용단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예수님이 심으신 생명의 씨앗은 그분의 때에 싹을 틔우기 마련이다. 마치 겨우내 꽁꽁 얼어붙은 대지에서 파릇파릇한 새싹이 움트는 것처럼, 생명의 기운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북한 땅에서도 십자가로 승리하며 세례를 베푸는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가고 있다.
고난 중에라도 믿음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가족을 전도하고 손자 손녀에게 세례를 베풀어서 신앙의 유산을 이어가는 김OO의 이야기를 통해 북한 땅에서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새로운 소망을 부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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